9월 5일 화요일 아침묵상-종의 책임과 사명
마가복음 12:1-12 (새번역)
1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일구어서, 울타리를 치고, 포도즙을 짜는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 그것을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멀리 떠났다.
2 때가 되어서, 주인은 농부들에게서 포도원 소출의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냈다.
3 그런데 그들은 그 종을 잡아서 때리고,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4 주인이 다시 다른 종을 농부들에게 보냈다. 그랬더니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때리고, 그를 능욕하였다.
5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농부들에게 보냈더니, 그들은 그 종을 죽였다. 그래서 또 다른 종을 많이 보냈는데,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였다.
6 이제 그에게는 단 한 사람, 곧 사랑하는 아들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 아들을 그들에게 보내며 말하기를 "그들이 내 아들이야 존중하겠지" 하였다.
7 그러나 그 농부들은 서로 말하였다. "이 사람은 상속자다. 그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유산은 우리의 차지가 될 것이다."
8 그러면서, 그들은 그를 잡아서 죽이고, 포도원 바깥에다가 내던졌다.
9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와서 농부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다.
10 너희는 성경에서 이런 말씀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집을 짓는 사람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11 이것은 주께서 하신 일이요, 우리 눈에는 놀랍게 보인다."
12 그들은 예수께서 자기들을 겨냥하여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렸으므로, 그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무리를 무서워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지금까지는
포도원 비유에 나오는
농부들의 악함을
타락한 교회 지도자들과 연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관점을 바꾸어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보낸
종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비유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는
자신이 정성껏 만든 포도원을
그 지역의 농부들에게 소작을 주고는
포도원 주인은 멀리 여행을 떠났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포도원의 포도가 열매를 맺을 때가 되자
포도원 주인은 종을 보내서
농부들에게 소출의 일부를 받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포도원 농부들은
포도원 주인이 보낸 종들을
때리고 조롱하며 빈손으로 돌려보냅니다.
심지어 어떤 종들은
농부들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포도원 주인은
인내와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는
계속해서 종들을 보냅니다.
하지만 포도원 농부들은
종들이 전하는 주인의 말을 듣지도 않고
주인이 보낸 종들을 죽입니다.
마침내 포도원 주인은
마지막 남은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지만
농부들은 주인의 아들조차도 죽여 버립니다.
그리고는 장례를 치러주기는커녕
아들의 시신을 포도원 바깥에다가
아무렇게나 내다 버립니다.
마지막으로 보낸 아들마저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포도원 주인은 어떻게 할까요?
주인이 직접 찾아 가서는
온갖 악행을 저지른 농부들을 죽이고는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이라고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2:9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와서 농부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다.
그런데 9절의 말씀에서
주의해서 보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비유의 말씀에서
포도원 주인이신 하나님의 심판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심판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비유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우리는
누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비유에서
우리가 맡아야 할 역할은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보내는
종의 책임과 사명을 맡아야 합니다.
종은 포도원 주인의 말씀을
포도원 농부들에게 전해야 하는
책임과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의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의 말씀을 전하는 종들이
탐욕스런 농부들에게
어떤 대접을 받았습니까?
온갖 핍박과 모욕을 당했으며
심지어는 목숨도 잃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도전이 무엇입니까?
주인이 돌아오셔서
포악하고 탐욕스런 농부들을
심판하기 전까지는
종들과 아들이 당한 수난과 죽음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탐욕스런 농부들로 인해
핍박과 조롱과 죽음이 반복되었음에도
종들은 주인의 말씀을 가지고
농부들에게 주인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수님 비유의 종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탐욕스러운 세상에 전해야 하는
책임과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탐욕스런 세상과 사람에게 전한다고
영광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주인이 보낸 종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탐욕스런 세상과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전하는 것은
핍박과 조롱과 모욕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탐욕스런 세상에서
기독교인이 감당하고 극복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은
결코 평탄하고 쉬운 길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추구하는 가치와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는
같지 않습니다.
세상에 속하여 살면서
세상과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무런 고난이나 핍박도 받지 않는 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에서 손해나 조롱 모욕도
받지 않으려는 사람은
결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악한 권세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당장의 승리와 영광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악한 권세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당장의 손해와 핍박과 조롱을
능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농부들에게 주인이 보낸 종들은
악하고 탐욕스런 농부들에게
매를 맞거나 모욕을 당하고 돌아왔습니다.
심지어 농부들에게 죽임을 당해
돌아오지 못한 종들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종들은
주인이 자신들을 악한 농부들에게 보낼 때
자기들을 도저히 갈 수 없다고
주인의 명령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종들과 주인의 아들은
악하고 탐욕스런 농부들에게
주인의 뜻 즉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물론 주인의 뜻을
올바르게 최선을 다해서 전한 결과는
악하고 탐욕스런 농부들에 의한
수난과 죽임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기독교인의 삶은
세상의 관점에서 보자면
수난과 모욕을 당하는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
주눅 들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권면으로
오늘 아침묵상을 마치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4:9-16
우리는 세계와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하나님께서 사도들인 우리를
마치 사형수처럼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로
내놓으신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지만,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하나, 여러분은 강합니다.
우리는 천대를 받고 있으나,
여러분은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바로 이 시각까지도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얻어맞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일을 하면서 고된 노동을 합니다.
우리는 욕을 먹으면
도리어 축복하여 주고,
박해를 받으면 참고,
비방을 받으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쓰레기처럼 되고,
이제까지 만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쓰는 것은,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과 같이
훈계하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만 명의 스승이 있을 몰라도,
아버지는 여럿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여러분을 낳았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오늘의 기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주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은혜와
구원이라는 은총이
세상에서 감당해야 하는
책임과 사명으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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