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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1일 목요일 아침묵상-하나님 사랑

9월 21일 목요일 아침묵상-하나님 사랑

 

마가복음 12:28-34 (새번역)

28 율법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다가와서,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을 잘 하시는 것을 보고서, 예수께 물었다.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 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학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밖에 다른 이는 없다고 하신 그 말씀은 옳습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낫습니다."

34 예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그 뒤에는 감히 예수께 더 묻는 사람이 없었다.

 

 

율법학자가 예수님에게

율법의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 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물었습니다.

 

으뜸이 되는 계명을 묻는

율법학자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첫째는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그것 자체로도 모든 율법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계명입니다.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야 말로

모든 계명의 근본정신이며,

 

계명을 지키는 사람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는 계명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율법은

안식일을 지키는 계명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안식일에 관한

다양한 교리나 규정들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을

잘 지키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안식일을 지키는 행동을 통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나타났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에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안식일뿐만 아니라 모세 오경에 기록된

율법의 모든 계명들을

어떻게 지켜야 되는지를 가르쳐주는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기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지 않고

규정으로만, 규칙으로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오히려 계명을 어기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계명을 지키려는 마음의 동기는

자기자랑이나 자기만족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계명을 지키므로 나타나는

신앙의 열매 역시

자기자랑이나 자기만족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만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신앙생활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인지를

분별하는 기준 역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사랑은 무엇이고,

이웃 사랑은 무엇입니까?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구별해서 생각하려고 합니다.

 

하나님 사랑에 관한 계명은

종교적인 의무이고

이웃 사랑에 대한 계명은

윤리적인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사랑을 위한 종교적 의무는

예배, 기도, 헌금 성경 묵상과 같은 것을

성실하게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이웃 사랑을 위한 윤리적 의무는

나눔, 돌봄, 구제와 같은 방식으로

이웃을 돌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식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따로 구별하는 것이

틀린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따로 구별하여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과연 예수님의 가르침에 맞는 것인지는

여러 가지로 의문이 생깁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율법학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마가복음 12:32-33

그러자 율법학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밖에 다른 이는 없다고 하신

그 말씀은 옳습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낫습니다."

 

율법학자의 이야기에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부분은

하나님 사랑과

번제와 희생제 구별하여

이야기 했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제와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율법학자는

번제와 희생 제사를 잘 드리는 것이

결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지 않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학자의 주장만이 아니라

구약시대 여러 선지자들의

일관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예레미야 6:20b

너희가 바치는 온갖 번제물도 싫고,

온갖 희생제물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번제나 희생제사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는 것은

예배나 기도와 같은 종교의식을

열심을 다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 위해

온 마음과 지혜와 힘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로 치면

번제와 희생제와 같은

예배나 기도와 같은 종교의식은

아무런 가치나 의미도 없는

불필요한 것일까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이 정성을 다해 드리는

번제와 희생 제사를

역겹다고 말씀 하셨습니까?

 

말로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고 했지만

정작 저들은 하나님을 위한 제사가 아니라

자기만족과 자기과시(자랑)를 위해

번제와 희생 제사를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종 제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그렇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제와 희생 제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배우려 하기보다는

자기만족과 자기과시의 수단으로

종교의식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규칙적으로 행하는

예배와 기도 묵상과 같은 종교예식은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규칙적으로 예배와 기도 묵상과 같은

종교 예식을 행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다양한 종교 예식이나 행동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더욱 잘 깨닫기 위함입니다.

 

온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에 대해 더욱 깊이 알고,

하나님의 뜻하신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규칙적으로 듣고 배우고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기도로 끊임없이 교제하며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배와 기도와 묵상과 같은

교회에서 행하는 다양한

종교 예식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오늘의 기도】

 

아침마다 주의 말씀을

읽고 배우고 묵상하는 우리의 믿음이

이웃에 대한 친절과 배려

사랑과 용서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