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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일 월요일-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5월 4일 월요일-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전도서 12장 5절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1. 주일을 보내고 새로운 한 주간의 일상을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말씀 묵상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한 주간 되시길 바랍니다.

 

2. 지금까지 우리는 전도서 12장을 통해 우리 육신의 장막이 하나둘 허물어지는 과정에 대한 전도자의 자세한 설명을 살펴보았습니다.

 

3. 오늘 묵상하는 전도서의 말씀은 그 쇠락의 정점이자, 마침내 인생의 긴 여정을 마칠 때 마주하게 되는 풍경에 대한 묘사입니다.

 

4. 전도서 12장 5절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5. 오늘 묵상하는 말씀은 “그런 자들은”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전도자가 말씀하는 “그런 자들은” 누구일까요?

 

6. 전도자가 말씀하는 그런 자들은 전도서 12장 3절과 4절에서 묘사한 쇠락의 날을 맞이한 사람들입니다.

 

7. 하지만 전도서의 전체 맥락에서 보면, 이것은 나와 상관없는 자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운명 앞에 서 있는 '모든 인간'을 뜻합니다.

 

8. 오늘 묵상하는 전도서 12장 5절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시적 묘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9. 이 구절 역시 3절과 4절처럼 교회의 전통적인 알레고리(비유) 해석과 오늘날 현대 신학자들의 해석이 교차합니다.

 

10. 높은 곳을 두려워하며 길에서 놀란다는 것은 전통적 해석에 따르면 조금만 높은 곳에 올라가도 어지럽고, 평탄한 길조차 걷는 것 자체가 공포가 되는 노년의 쇠약함이라고 설명합니다.

 

11. 현대 신학자들은 이것을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마지막 여행을 앞두고 느끼는 인간의 실존적 공포에 대한 고백이라고 해석합니다.

 

12. 살구나무가 꽃이 핀다는 비유는 전도서 최고의 비유 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살구나무는 실제로는 이스라엘에서 자라는 아몬드 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한겨울인 1월에 흰 꽃을 피웁니다.

 

13. 살구나무가 꽃이 핀다는 것은 전통적인 해석으로는 검은 머리가 백발로 변해버린 노년의 머리를 비유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14. 겨울에 피는 살구나무의 하얀 꽃은 대단히 아름답지만, 곧 사라질 꽃입니다. 마찬가지로 노년의 백발은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비유한다는 것입니다.


15. 현대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죽음의 계절이 당도했음을 알리는 자연의 신호라고 해석합니다.

 

16. 메뚜기도 짐이 된다는 구절에 대한 전통적 해석은 기력의 완전한 소진을 의미합니다. 메뚜기는 아주 가벼운 곤충이지만 쇠약해진 노인에게는 그 작은 메뚜기 무게조차 견디기 힘든 고통이 됩니다.

 

17. 현대 신학자들은 활기차게 뛰어다니던 메뚜기처럼 역동적이었던 삶이 이제는 지극히 작은 일도 감당하기 어려운 무력감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18. 정욕이 그친다는 것은 욕구와 의욕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정욕"은 단순히 성적 욕구만이 아니라 삶을 향한 전반적인 의욕과 욕망을 가리킵니다.

 

19. 이것을 현대 신학자들은 살고 싶은 마음, 무언가를 하고 싶은 의지, 삶에 대한 열정이 사라진 한 마디로 모든 집착과 욕망으로부터 강제로 분리되는 죽음의 문턱을 의미한다고 여깁니다.

 

20. 전도자는 이 처절한 쇠락의 끝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21. 여기서 전도자가 말씀하는 영원한 집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일차적으로는 우리가 묻히게 될 무덤을 뜻합니다.

 

22. 이전 묵상에서 말씀드렸듯이, 히브리어로 '창조주(보레)'와 '무덤(보르)'은 발음이 매우 비슷합니다. 우리는 창조주에게서 와서 무덤을 지나 다시 창조주께로 돌아갑니다.

 

23. 지금까지 전도서는 사람이 돌아가는 곳을 "한 곳"(전3:20), "나온 곳"(전5:15), "죽은 자에게로"(전9:3)라고 표현했습니다.

 

24. 그런데 전도서 마지막에 이르러 그 목적지를 "영원한 집"이라고 했습니다. "영원한 집"이라는 전도서의 표현에는 역설적 위로가 담겨 있습니다.

 

25. 영원한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장소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가장 잘 아시는 창조주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인격적인 사건입니다.

 

26.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한다는 것은 한 개인의 죽음이 공식화되었음을 뜻합니다. 인생이라는 무대의 커튼이 내려지고, 남겨진 자들이 슬퍼하며 거리를 지나는 풍경입니다.

 

27. 누군가의 장례식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슬픔을 나누는 그 거리가 바로 전도자가 말한 현장입니다.

 

28. 전도자는 왜 이렇게 자세하게 쇠락과 죽음의 날을 묘사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우리를 두려움에 빠지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유한한 인생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 위함입니다.

 

29. 아직 높은 곳을 두렵지 않게 오를 수 있고, 아직 길을 걱정 없이 걸을 수 있고, 아직 의욕이 살아있고, 아직 조문객들이 오지 않은 지금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30. 우리는 조문객들이 우리를 위해 거리를 오가기 전에, 우리가 먼저 사람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열정이 그치기 전에 지금의 열정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31. 혹시 거울 속에서 하얗게 핀 살구꽃(백발)을 보며 서글퍼하고 계십니까? 예전에는 가벼웠던 일상의 책임들이 이제는 메뚜기처럼 무겁게 느껴지십니까?

 

32.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인생을 불성실하게 살아서가 아니라, 창조주께서 우리 모두에게 허락하신 인생의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그 안에서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33. 이민의 모진 세월을 견디느라 연약해진 우리의 육신은 주님 보시기에 세상 그 무엇보다 찬란한 인생의 훈장입니다.

 

34. 오늘 하루, 우리 인생의 문이 닫히기 전, 아직 우리에게 남겨진 기쁨의 조각들을 소중히 여깁시다.

 

35. 그리고 우리를 위해 '영원한 집'을 예비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신뢰하며, 당당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갑시다.

 

〈 함께 드리는 기도 〉

우리의 영원한 본향이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 육신의 장막이 낡아갈수록 우리 영혼은 더욱 새로워지게 하시고, 이 땅의 집착을 내려놓고 주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집'을 사모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이민의 고단한 길 위에서 놀라고 지친 우리 성도들의 마음을 안아주시고, 우리가 창조주께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오늘 우리에게 주신 작은 기쁨들을 찬송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인생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