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 목요일-내 삶의 자리를 바꾸는 위대한 동행
요한복음 1:1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 새로운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도 말씀 앞에 나아오신 모든 분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2. 지난 사흘 동안 우리는 요한복음 1장 1절을 함께 묵상했습니다. 첫날에는 요한복음이 왜 제4복음서인지, 그리고 공관복음서와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3. 둘째 날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선언이 창세기 1장 1절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말씀이 왜 우리 삶의 유일한 회복의 길인지를 묵상했습니다.
4. 셋째 날에는 요한이 왜 예수님을 '로고스'(말씀)라고 불렀는지, 유대인과 헬라인 두 세계를 향해 동시에 선언된 그 이름의 깊이를 살펴보았습니다.
5. 오늘은 요한복음 1장 1절의 후반부, 즉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는 요한의 담대한 선언에 대해 묵상하고자 합니다.
6. 요한의 이 담대한 선언에는 기독교 신학의 가장 깊은 신비인 삼위일체의 원리와 로고스(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7. 먼저 우리는 사도 요한이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라고 선포한 것의 참된 의미를 자세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8. 이 구절은 단순히 로고스(말씀)가 시간적으로 혹은 공간적으로 말씀이 하나님 옆자리에 나란히 서 있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9. 우리말 성경의 '함께 계셨다'라는 표현 뒤에 숨겨진 헬라어 원어의 뉘앙스는 훨씬 더 역동적이고 친밀합니다.
10. 그래서 헬라어 원어 성경을 직역하면 로고스(말씀)가 단순히 하나님 곁에 나란히 계셨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며 존재하셨다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11. 즉 말씀이신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완벽한 사랑과 신뢰의 관계 안에 거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함께 계심의 신비입니다.
12.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요한복음의 선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과 그분의 성품이 성부 하나님과 끊어지지 않는 친밀한 연합 속에서 시작되었음을 선포합니다.
13. 태초부터 말씀은 하나님과 단절된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존재하셨습니다. 이 관계가 바로 성부와 성자의 영원한 사귐입니다.
14. 그런데 사도 요한은 이 아름답고 신비한 성부 하나님과 로고스(말씀)의 역동적인 동행을 선포하자마자, 곧바로 우리의 유한한 이성을 뛰어넘는 거대한 신학적 반전을 선언합니다.
15. 요한복음은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라고 선언하면서, 곧이어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16.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는 요한복음의 선언은 언뜻 들으면 모순처럼 들립니다.
17.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면 하나님과 구별되는 존재라는 뜻이고, '곧 하나님이시니라'면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18. 요한은 말씀이신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흡수되어 계신다고 하지 않고 '함께'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성자가 성부의 그늘에 가려진 존재가 아니라, 고유한 인격을 가진 분임을 뜻합니다.
19. 창조주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동등하시면서도, 영원한 사랑 안에서 성부와 깊이 소통하고 연합하시는 성자의 모습이 바로 이 '함께'라는 표현에 담겨 있습니다.
20. 다시 말해 말씀과 하나님은 하나이십니다. 그러나 말씀은 하나님과 구분되는 독립적 인격이십니다. 이 둘 사이의 긴장이 바로 삼위일체 신학의 핵심입니다.
21. 요한이 이렇게 기록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교회를 위협하던 두 가지 잘못된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22. 하나는 예수님을 단순한 인간으로 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을 하나님과 완전히 동일시하여 성부와의 구별을 없애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이 두 극단을 동시에 거부합니다.
23.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라는 표현은 말씀(로고스)이 성부 하나님과 구별되는 독립적 인격임을 선언합니다.
24. 그리고 '말씀(로고스)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표현은 그 말씀(로고스)이 성부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하나님이심을 선언합니다.
25. 이것은 말씀과 하나님은 구별되지만 동등하시고, 다르지만 하나이신 분, 그것이 바로 요한이 선언하는 말씀(로고스)의 정체입니다.
26. 물론 이것은 인간의 언어로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기독교 신앙의 신비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이성으로 이것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27. 중요한 것은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는 요한복음의 신비하고도 놀라운 선언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과 도전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28. 이방의 낯선 땅에서 이민자로 살아야 하는 우리의 삶이란 어쩌면 끊임없이 '함께할 대상'과 '존재의 기반'을 찾아 나서는 거친 여정과도 같습니다.
29. 나를 증명해 줄 배경도 없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학연이나 지연도 없는 광야 같은 형편 속에서, 이민자들은 늘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쓸쓸함을 안고 살아갑니다.
30. 바로 그 외롭고 흔들리는 이민자의 삶에 오늘 요한복음의 말씀이 우리의 영적 정체성을 강력하게 깨워 줍니다.
31.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성부 하나님과 가장 친밀하게 함께 계셨던 영광의 주님이십니다.
32.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하셨던 말씀(로고스)이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33. 우리가 비록 이 땅에서는 나그네이고 이방인일지라도,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영원한 사귐 속에 계셨던 그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 나와 함께 계십니다.
34. 더 나아가,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이민 생활의 거친 풍랑 속에서 세상의 헛된 소리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내 삶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강력한 도전을 받습니다.
35. 주변의 수많은 형편과 흔들리는 경제적 상황,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세상의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36. 세상의 물질과 조건은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지만, 하나님이신 주님의 말씀은 영원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삶의 자리를 새롭게 창조하고 계십니다.
37. 이 아침,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인격적으로 말을 걸어오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시다. 말씀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고 그 권능을 힘입어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 함께 드리는 기도 >
태초부터 계셨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신 말씀이신 하나님 아버지, 낯선 땅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때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 같은 외로움 속에서도 우리의 참된 고향이 당신 안에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말씀이 곧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 말씀이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오늘 하루, 말씀이신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옵소서. 그 동행이 우리 삶의 자리를 바꾸는 능력임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친히 말씀으로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