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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화요일-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한다

6월 9일 화요일-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한다

 

요한복음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1. 오늘도 하루의 일상을 시작하며 말씀 앞에 선 모든 이들의 삶에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여, 복된 하루 살아내시길 축복합니다.

 

2. 어제 묵상에서 우리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본래부터 솟아나는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이 모든 사람의 빛이라는 선언을 살펴보았습니다.

 

3. 그리고 그 빛은 나 혼자만 간직하는 골방의 빛이 아니라, 어두운 세상을 향해 비추어야 하는 공공의 빛임을 묵상했습니다.

 

4.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요한복음 1장 5절의 말씀은, 그 생명의 빛이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구체적인 현실의 한복판에서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보여주는 선포입니다.

 

5. 사도 요한은 빛과 어둠의 만남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요한복음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 어제 말씀이 빛을 선언했다면, 오늘 말씀은 그 빛이 어둠과 맞닥뜨리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빛과 어둠의 충돌, 그리고 그 결과가 오늘 묵상의 핵심입니다.

 

7. 오늘 묵상하는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우리 삶에 올바르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요한복음이 말하는 '어둠'이 무엇을 상징하고 의미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8. 요한복음에서 어둠은 단순히 밤이나 빛이 없는 물리적 상태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어둠은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의 영적 상태를 가리킵니다.

 

9. 말씀의 다스림을 거부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려 했던 인간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하지 못하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방황하는 상태, 그것이 바로 성경이 진단하는 인간의 어둠입니다.

 

10. 요한복음에서 어둠은 세 가지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 하나님을 거부하는 반역, 그리고 그 결과로 찾아오는 죽음입니다.

 

11. 어둠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능동적인 선택의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9절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인간의 모습을 고발합니다. 어둠은 인간이 선택한 방향입니다.

 

12. 이 어둠은 개인의 내면에만 있지 않습니다. 어둠은 세상의 구조 속에도 있습니다. 약자를 짓누르는 불의, 진실을 감추는 거짓, 사람을 도구로 삼는 탐욕, 이 모든 것이 어둠입니다.

 

13. 요한복음이 선언하는 이 어둠은 우리가 날마다 살아가는 이 세상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숨 쉬는 이 현실 속에 어둠이 있습니다.

 

14. 그런데 요한복음은 그 어둠 속으로 빛이 비친다고 선언합니다. 빛은 어둠이 없는 안전한 곳으로 물러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빛이 어둠으로 들어갑니다.

 

15. 이것은 말씀이시며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말씀이시며 빛이신 그분은 어둠이 가득한 이 세상 한가운데로 친히 들어오셨습니다.

 

16. 빛은 어둠 속에서 세 가지를 동시에 합니다. 어둠을 드러내고, 길을 보여주고, 생명을 살립니다.

 

17. 빛은 어둠을 드러냅니다. 방 안이 캄캄할 때는 먼지도, 더러움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빛이 들어오면 숨겨져 있던 것들이 모두 드러납니다.

 

18.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인간의 위선과 교만과 죄가 그 앞에서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19. 빛은 우리가 감추고 싶었던 것을 숨겨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정직하게 만듭니다.

 

20. 빛은 길을 보여줍니다. 어둠 속에서는 한 발도 내딛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보입니다.

 

21. 말씀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보여주시는 빛이십니다. 이민 생활에서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그 빛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다음 한 걸음을 보여줍니다.

 

22. 빛은 생명을 살립니다. 식물이 빛 없이 자라지 못하듯, 인간의 영혼도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 없이는 참된 성장이 없습니다. 빛이 우리 안에 들어올 때 죽었던 것들이 살아납니다.

 

23. 이처럼 빛은 어둠 속에서 세 가지를 동시에 이루어 갑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 빛 앞에서 어둠은 무엇을 했습니까?

 

24. 요한복음은 빛이 어둠에 비치지만 어둠이 깨닫지 못한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깨닫는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집니다. '이해하다'라는 뜻과 '이기다, 압도하다'라는 뜻입니다.

 

25. 그래서 새번역 성경은 이것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요1:5(새번역)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26. 어둠이 빛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번역과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했다는 번역은 모두 맞으며, 서로의 부족한 내용을 보완해 줍니다.

 

27. 어둠이 빛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어둠은 빛의 언어를 모릅니다. 어둠은 빛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28. 빛이 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것을, 빛이 죽음으로 승리하는 것을 어둠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둠은 빛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것이 승리라고 생각했습니다.

 

29. 그러나 빛은 죽음을 통해 부활하셨고, 어둠이 감당할 수 없는 방식으로 승리하셨습니다.

 

30.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기도 합니다. 수천 년간 이어진 동굴의 어둠도 성냥 하나가 켜지는 순간 물러납니다.

 

31. 어둠은 빛에 맞서 싸울 무기가 없습니다. 어둠은 빛이 없을 때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스스로 사라집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이 선언하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32. 이민 생활을 하다 보면 어둠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비자 문제, 직장의 벽, 자녀와의 갈등, 외로움과 소외감. 그 어둠이 너무 짙어서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33. 그러나 요한복음은 선언합니다. 그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이길 수 없다고. 어둠이 빛을 이긴 역사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34. 따라서 우리 앞의 어둠이 얼마나 짙어 보이든, 그 어둠은 이미 패배한 것입니다.

 

35. 우리가 말씀의 빛을 따라 순종하며 걸어갈 때, 무질서와 공허로 가득했던 우리의 일터와 가정은 주님의 선하신 창조의 질서가 회복되는 영광스러운 코스모스의 성소가 될 것입니다.

 

< 함께 드리는 기도 >

빛으로 오신 주님, 어둠 속으로 친히 걸어 들어오신 주님, 당신의 빛이 오늘도 우리 삶의 자리에 비치고 있음을 믿습니다. 이방의 땅에서 하루하루 치열한 삶을 살아내며 내면에 드리워진 외로움과 미래에 대한 염려라는 어둠에 갇혀,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사는 우리의 연약한 심령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 앞의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그 어둠이 이미 패배했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생명의 빛으로 우리 안의 모든 우울과 두려움의 어둠을 넉넉히 몰아내게 하시고, 내가 딛고 선 일터와 가정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흘려보내는 거룩한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삶의 영원한 생명과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