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 금요일-가장 깊은 소외 속에서 만나는 위로
요한복음 1:10-11
요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 한 주간의 일상을 마무리하는 금요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말씀의 샘가로 나아오신 모든 분의 삶에, 우리의 참 빛이 되신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평강이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2. 지난 묵상에서 우리는 세상의 수많은 가짜 빛들을 분별하고, 우리 각 사람의 이름을 부르시며 차별 없이 개개인의 영혼을 정밀하게 비추시는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3.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요한복음 1장 10절과 11절은,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 역사 속에 행하신 일과 그 빛 앞에서 인류가 보인 가장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반응을 고발합니다.
4. 요1:10-11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5. 오늘 묵상하는 말씀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말씀(로고스)이 친히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찾아오셨는데, 도리어 사람들에게 철저히 거부당하셨다는 선언입니다.
6. 요한복음은 먼저 그가 세상에 계셨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셨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7. 주님은 이 세상에 나그네처럼 잠깐 들르신 방문자가 아니십니다. 이 세상은 태초에 말씀이신 주님이 직접 창조하신 그분의 집이며, 창조주가 자신의 피조 세계 안에 당당히 거하신다는 주권의 선언입니다.
8. 그런데 요한복음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고발을 이어갑니다.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는데, 세상이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9. 왜 세상은 자신들을 지으신 창조주를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몰라서도 아닙니다.
10. 우리가 이미 묵상했듯이, 참 빛은 각 사람에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빛이 오지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11. 문제는 의지였고 선택이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9절의 선언처럼, 인간이 참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 문제의 본질이었습니다.
12. 어둠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빛 앞에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 채 어둠 속에 숨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참 빛으로 오신 주님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13. 요한복음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만물의 창조주이자 주인이 자기 땅에 왔지만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는 선언입니다.
14. 여기서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은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15.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 전체와 그 안에 사는 모든 인류를 뜻합니다. 좁은 의미로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뜻합니다.
16.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은 수백 년 동안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구약의 예언서가 장차 오실 메시아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메시아가 오셨을 때 그들은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17. 왜 그랬습니까? 그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의 모습과 실제로 세상에 오신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18. 그들은 자신들의 식민지 상황을 단번에 바꾸어 줄 정치적 해방자, 즉 세상의 권력과 힘이라는 눈에 보이는 가짜 빛을 기대했습니다.
19. 그러나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그들이 감추고 싶어 했던 종교적 위선과 교만이라는 은밀한 어둠을 정직하게 폭로하셨습니다.
20. 상황을 바꾸는 대리인을 원했던 그들에게, 사람 자체를 새롭게 변화시키려 하시는 주님의 인격적인 통치는 거북한 거절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21. 한마디로 그들은 자신들의 필요와 욕망에 맞는 자신들이 만들어 낸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참 메시아가 오시자 그를 알아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22. 오늘 묵상하는 말씀은 우리 역시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 낸 그런 예수님을 믿으려고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강력한 영적 도전을 줍니다.
23. 자기 백성이 메시아를 거부한 이유가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아의 모습과 달랐기 때문이듯이, 우리도 내가 바라는 예수님을 기대하다가 참 예수님을 외면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24. 내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역사하지 않으실 때, 내 계획과 다른 방향으로 이끄실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25. 그럴 때마다 실망하고 돌아선다면, 그것은 자기 백성이 메시아를 영접하지 않은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26. 예수님은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게 진정으로 필요한 방식으로 오십니다. 나귀를 타고 오신 왕처럼, 우리의 기대를 벗어나는 방식으로 오실 때도 그분을 영접하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27. 더 나아가 알면서도 영접하지 않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세상이 창조주를 몰라본 것도, 자기 백성이 메시아를 거부한 것도 지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의지와 선택의 문제였습니다.
28. 창조주가 자기 땅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으시고 철저하게 거부당하셨다는 사실은, 오늘날 미국 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위로로 다가옵니다.
29. 이민 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소외감과 거절을 경험하곤 합니다. 타국 땅에서 겉도는 나그네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이 땅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결핍에 빠지기도 합니다.
30. 바로 그 외롭고 고단한 마음에 오늘 묵상하는 요한복음의 말씀은 우리에게 깊은 연민의 손길을 내밉니다.
31.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소외와 거절의 아픔이 무엇인지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32. 주님은 타향에서 거부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친히 창조하신 당신의 세상에서, 당신과 친밀한 언약을 맺은 자기 백성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셨습니다.
33. 가장 환영받아야 할 곳에서 가장 깊은 배척을 경험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은 그 누구보다 우리의 무너진 마음을 온전히 안아주시는 위로의 주님이십니다.
34. 나를 가장 잘 아시는 주님의 이 위로 위에 설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늘 시민권자의 당당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자기 땅에 오셨으나 외면당하신 주님,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를 향해 빛을 비추시는 주님의 그 사랑 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예수님만을 기다리다가 참 예수님을 외면하는 어리석음에서 지켜 주옵소서. 알면서도 외면하는 완고함에서 우리를 돌이켜 주옵소서. 낯선 이민의 땅에서 거절과 소외감을 느끼며 외로워했던 우리의 마음에, 그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주님의 깊은 연민과 위로가 임하게 하옵소서. 참 빛으로 오신 주님께 우리 삶의 주도권을 온전히 드립니다. 우리를 가장 선하고 존귀한 길로 인도하옵소서. 우리와 날마다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