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7일 수요일-진흙탕 속으로 뛰어드신 하나님
요한복음 1:14a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1. 오늘도 우리 가운데 찾아오셔서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힘입어 살아가는 복된 하루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지금까지 우리는 요한복음 1장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이시며, 만물을 창조하신 참 빛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3. 그리고 어제 묵상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는 혈통이나 인간의 노력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는 요한복음의 선언을 묵상했습니다.
4. 오늘 묵상하는 말씀은 지금까지 우리가 묵상했던 그 모든 이야기의 절정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5.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6. 이 구절은 요한복음 전체를 단 한 절로 요약한 것과 같은 요한복음의 정수이며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자 신비입니다.
7. 오늘 묵상하는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것을 신학에서는 성육신(Incarnation)이라고 합니다.
8. 성육신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을 창조하신 그 말씀(로고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선언입니다.
9.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거나 몸을 입으셨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선언합니다.
10. 여기서 육신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사람의 몸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우며,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의 가장 취약한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가 육신입니다.
11. 다시 말해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거룩한 말씀(로고스)이, 무력하고 깨어지기 쉬운 연약한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12.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은 피곤할 때 쉬셔야 했고, 배가 고플 때 음식을 드셔야 했으며, 친구의 죽음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13. 심지어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배신당하고 버림받는 아픔까지 몸으로 겪으셔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신비인 성육신입니다.
14. 세상의 많은 종교는 어떻게 해야 사람이 신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15. 하지만 복음은 정반대로 말씀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올라간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내려오신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가장 놀라운 반전입니다.
16.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사람이 되셨습니까? 그것은 죄와 상처와 죽음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17. 하나님은 저 높은 하늘 위에서 “열심히 살아라”, “스스로 올라오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있는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오셨습니다.
18. 마치 깊은 진흙탕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가 자기의 옷과 몸이 더러워지는 것도 잊은 채 직접 진흙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19. 하나님의 성육신은 사랑의 방향을 보여 줍니다. 육신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 주신 사랑은 높은 곳에서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20. 사람의 연약한 육신으로 세상에 오셨기에 예수님은 인간의 눈물과 외로움을 직접 경험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아픔을 모른 척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21. 그래서 요한복음은 이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거하시매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의 뜻은 장막을 친다는 것입니다.
22. 이 부분을 직역하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입니다.
23. 장막을 친다는 요한복음의 선언은 광야 시대 하나님께서 성막 가운데 거하시며 이스라엘과 함께하셨던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24. 다시 말해 하나님은 더 이상 성전이라는 건물 안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가운데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25. 하나님께서 멀리서 우리를 내려다보신 것이 아닙니다. 안전한 거리에서 우리를 동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26. 친히 우리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오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동네에서 사시고, 우리와 같은 밥을 드시고, 우리와 같은 언어로 말씀하십니다.
27. 이것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라는 요한복음의 선언이 가진 신학적 의미입니다.
28.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멀리서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친히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함께 사셨습니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의 사랑과 섬김은 언제나 함께함에서 시작됩니다.
29. 이민 생활을 하다 보면 낯선 땅에서 그리고 언어와 문화의 장벽 앞에서 나만 홀로 고립된 것 같은 외로움에 사로잡히는 경험을 합니다.
30. 그럴 때면 하나님께서 나의 이 외로움을 알고 계실까? 하는 의문이 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31. 그런데 가장 연약한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은 변두리 땅에서 나고 자라셨습니다. 예수님이 나고 자란 갈릴리는 당시 유대인들에게도 무시당하는 변두리 시골이었습니다.
32. 그래서 예수님은 변두리에서 소외된 자의 고독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이가 없는 외로움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33.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고 거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있는 바로 그 자리 즉 낯선 이민의 땅, 고단한 일상의 자리에 함께 계신다는 선언입니다.
34.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예배당 문을 열 때만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일터에서, 이민 서류 앞에서, 자녀의 학교 앞에서도, 바로 그 자리에 이미 장막을 치고 계신 분입니다.
35. 오늘 하루, 이 말씀이 우리의 시선을 바꾸어 주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곁에 오신 주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이 자리에 계십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찾아오신 주님, 높은 곳에만 머물지 않으시고 우리의 연약함과 눈물 속으로 들어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의 사랑을 본받아 우리도 이웃의 아픔 곁에 함께 머물 수 있는 사랑의 사람 되게 하옵소서.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낮아지는 사랑의 영광을 따라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