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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 수요일-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6월 24일 수요일-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요한복음 1:18

(개역개정)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새번역)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나, 아버지의 품 속에 계시는 독생자이신 하나님이 그분을 나타내 보이셨다.

 

1. 새로운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알아 가는 복된 하루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오늘 묵상하는 요한복음 1장 18절은 요한복음 서론(1:1-18)의 마지막 절이며, 지금까지 요한복음이 소개한 모든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말씀입니다.

 

3. 요한복음 1:18 (새번역)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나, 아버지의 품 속에 계시는 독생자이신 하나님이 그분을 나타내 보이셨다.

 

4. 오늘 묵상하는 말씀은 단순히 예수님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었다는 위대한 복음의 선언입니다.

 

5. 요한복음 1장 18절 말씀은 “사람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성경의 대답입니다.

 

6. 사람은 오래전부터 하나님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철학자들은 생각을 통해 하나님을 찾으려 했고, 종교인들은 수행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다가가려 했습니다.

 

7. 그러나 요한복음은 매우 단호하게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인간 스스로의 지혜와 노력만으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8. 물론 성경에는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고, 이사야가 하나님을 보았으며, 에스겔이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9. 하지만 그 누구도 하나님의 본질 자체를 완전히 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람은 유한하고 하나님은 무한하시며,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인간의 교만이 하나님과 깊은 간격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10. 마치 작은 컵으로 바다 전체를 담을 수 없듯이 사람의 이성과 경험으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11. 그렇다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에게 알 수 없는 분으로 남아야 합니까? 요한복음은 이 물음에 대해 놀라운 진리를 선포합니다.

 

12. 아버지의 품속에 계시는 독생자이신 하나님이 그분을 나타내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독생자이신 하나님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13. 요한복음은 하나님과 육신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과의 관계를 아버지 품 속에 계시는 독생자이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14. 여기서 아버지 품은 단순한 장소가 아닙니다. 사랑과 친밀함의 자리입니다. 어린아이가 아버지의 품에 안겨 가장 안전함을 느끼듯이, 예수님은 영원부터 하나님과 가장 깊은 사랑의 관계 안에 계셨습니다.

 

15. 독생하신 하나님이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단순한 대리인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일한 본성을 가지신 참 하나님이심을 선언하는 표현입니다.

 

16. 요한복음은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지금까지 사람이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을 나타내셨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나타내셨느니라"로 한글 성경이 번역한 헬라어의 본래 의미는 "설명하다" 또는 "드러내다"입니다.

 

17. 다시 말해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 눈높이에 맞게 보여주시고 설명해 주시는 분입니다.

 

18. 예수님의 일생 자체가 하나님에 대한 가장 완전하고 정확한 해설서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 모든 행동, 모든 눈물, 모든 분노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는 교과서와 같습니다.

 

19.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을 무섭고 엄격한 재판관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습니다.

 

20. 병든 사람을 고치시고, 죄인을 품으시고, 배고픈 사람을 먹이시고, 눈물 흘리는 사람 곁에 머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게 됩니다.

 

21.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것은 슬픔과 죽음 앞에 선 인간과 함께 눈물 흘리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22. 예수님은 율법이 부정한 사람이라고 규정했던 나병 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그를 직접 만지셨습니다. 이것은 부정한 자도 사랑으로 품으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23.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상종하지 않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먼저 말을 건네셨습니다. 그 여인은 민족과 성별의 장벽에 갇혀 소외되고 배척받는 사람이었습니다.

 

24. 예수님은 사람들이 그어놓은 장벽을 넘어, 세상과 사람이 배척하는 자를 먼저 찾아가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25. 종교 지도자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붙잡아 왔을 때 예수님은 정죄 대신 용서를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은 심판보다 은혜를 앞세우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26. 이처럼 예수님은 세상에서의 삶 전체로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14:9)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7. 우리는 때때로 예수님과 무관하게 자기 기준에 따라 하나님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어릴 때 받은 상처가 하나님을 엄격한 심판자로 만들기도 하고, 인생의 고통이 하나님을 무관심한 방관자로 만들기도 합니다.

 

28. 그러나 요한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으십니까? 사람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보면 됩니다.

 

29. 예수님이 우는 자와 함께 우셨다면,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예수님이 경계 밖의 사람을 찾아오셨다면,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30. 예수님이 육신으로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삶으로 예수님을 나타내야 합니다.

 

31. 예수님이 그러하신 것처럼 우는 자 곁에서 함께 울 때, 소외된 자에게 먼저 말을 건넬 때, 정죄 대신 용서를 선택할 때, 우리도 예수님께서 나타내신 하나님을 이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32. 이민 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33.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다시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답을 우리의 생각이 아닌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찾아야 합니다.

 

34. 예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라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정죄하기보다 회복시키시는 분이며, 포기하기보다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35.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신앙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 가는 여정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하다면, 자신의 두려움을 들여다보기보다 예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 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었지만, 주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찾아와 주셨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를 날마다 더욱 깊이 알아 가게 하시고, 두려움보다 신뢰로, 정죄보다 사랑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닮아 가는 자녀들이 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배우게 된 하나님의 마음을 세상 가운데 드러내게 하옵소서.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