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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화요일-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7월 14일 화요일-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요한복음 1:45-46

요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1: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1. 새로운 한 날을 시작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편견의 자리에서 은혜의 자리로 옮기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이 여러분의 하루 가운데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2. 어제 묵상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빌립을 만나 “나를 따르라”라고 그를 제자로 부르신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3. 빌립은 자신이 먼저 예수님을 찾아간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먼저 찾아와 주신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신앙은 내가 하나님을 발견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찾아오신 은혜의 이야기입니다.

 

4. 오늘 묵상하는 말씀은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은 빌립이 곧장 다른 사람을 찾아가는 내용입니다.

 

5. 요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6. 빌립이 찾아간 사람은 나다나엘입니다. 나다나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주셨다”라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7. 요한복음에만 나다나엘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공관복음서에는 이 이름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나다나엘을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바돌로매와 같은 인물로 보기도 합니다.

 

8.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빌립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다음, 그 부르심을 혼자만 간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안드레가 자기 형제 시몬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듯이, 빌립도 나다나엘을 찾아갔습니다.

 

9.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빌립은 그 만남을 혼자 간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곧바로 나다나엘을 찾아가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다”라고 말합니다.

 

10. 여기서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라는 표현은 구약 전체가 기다려 온 메시아를 뜻합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11. 빌립은 자신을 찾아와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이, 율법과 선지자들이 기다려 온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라고 소개한 것입니다.

 

12. 그런데 빌립은 율법과 선지자가 예언한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메시아를 소개하면서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합니다.

 

13. 이것은 당시의 일반적인 표현 방식을 따른 것이라 해도, 온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의 호칭치고는 너무나 평범한 소개였습니다.

 

14. 그런데 예수님에 관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빌립의 소개에는 성육신의 깊은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15. 사람들은 온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라면 당연히 예루살렘의 중심부나 왕궁에 가까운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오셔야 한다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16. 그러나 하나님이신 그분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형상을 입고, 갈릴리 나사렛에서 요셉의 아들로 알려진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17. 이것이 성육신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들의 기대와 계산을 뛰어넘어, 작고 평범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자리로 오셨습니다.

 

18. 그러나 나다나엘은 빌립의 말을 듣고 거기에 담긴 참된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 이렇게 반문합니다.

 

19. 요1: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20. 나다나엘의 이러한 반응은 그 시대의 상식과 구약성경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의심이었습니다.

 

21. 당시 나사렛은 예루살렘이나 베들레헴처럼 주목받는 중심지가 아니라, 갈릴리의 작고 알려지지 않은 마을이었습니다.

 

22. 나다나엘의 반응을 보면, 나사렛은 메시아가 나올 만한 곳으로 쉽게 기대되지 않았던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23. 게다가 구약성경에 익숙했던 나다나엘에게는, 메시아가 베들레헴과 연결된다는 미가서의 약속도 자연스럽게 떠올랐을 것입니다.

 

24.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는 말은 그 시대만의 말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비슷한 말을 하며 삽니다.

 

25. 우리는 너무 자주 사람을 출신으로 판단하고, 겉모습으로 가능성을 평가합니다. 낯선 이민 사회에서 우리 역시 주류가 되지 못하고 변방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 때문에 위축되곤 합니다.

 

26.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그 변방의 자리에서 새 일을 시작하십니다. 화려한 중심부가 아니라, 갈릴리의 후미진 곳, 지극히 평범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27. 헨리 나우웬은 하나님의 은혜가 화려한 중심부보다 인간의 상처와 소외가 있는 자리에서 더 깊이 드러난다고 보았습니다.

 

28. 나다나엘의 반문에 빌립은 길게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네가 틀렸다고 몰아세우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아주 짧게 대답했습니다. “와서 보라.”

 

29. 이것은 앞서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두 사람에게 하셨던 초대와 같은 말입니다.

 

30. 신앙의 증언은 사람을 논쟁에서 이기려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증언은 사람을 예수님께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31. 빌립은 나다나엘의 편견을 지적하는 대신 예수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와서 보라”는 말은 믿음을 강요하는 말이 아니라, 만남으로 초대하는 말입니다.

 

32. “와서 보라”라는 초대는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복음의 언어입니다. 완벽한 교회라서 와 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답을 다 가지고 있어서 와 보라는 것도 아닙니다.

 

33. 부족하지만 함께 주님을 찾고, 함께 울고 웃으며, 함께 하나님 나라의 길을 배우는 공동체이기에 와서 보라는 것입니다.

 

34. 이민의 삶을 사는 우리도 비슷한 말을 들으며 살아갑니다. “이민자가 무슨.”, “작은 교회가 무슨.” 그러나 하나님은 나사렛에서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35. 주류 사회가 무시하는 자리에서,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의 선한 일은 오늘도 시작됩니다.

 

36. 따라서 누군가를 너무 빨리 판단하지 맙시다. 나 자신도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하지 못한 자리에서도 선한 것을 나게 하시는 분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주목받는 중심부가 아니라 갈릴리 나사렛의 낮고 평범한 자리로 오신 주님, 우리의 참된 구원자가 되어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우리 안에 숨어 있는 편견과 판단의 마음을 내려놓게 하옵소서. 나사렛 같은 작은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선한 일을 시작하시는 주님을 믿게 하옵소서. 논쟁으로 사람을 이기려 하기보다 “와서 보라”는 초대의 마음으로 이웃을 주님께 인도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평범한 삶과 작은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은혜가 시작되는 자리로 삼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