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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 수요일-의심은 있어도 간사함은 없는 사람

7월 15일 수요일-의심은 있어도 간사함은 없는 사람

 

요한복음 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1. 오늘도 새로운 일상을 시작합니다. 우리를 편견과 불안의 자리를 넘어 진리와 은혜의 자리로 이끄시는 주님의 은혜가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모든 이들에게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2. 어제 묵상에서 우리는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를 만났다고 증언했지만,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며 반문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3. 나다나엘의 반문은 단순히 나사렛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던 성경 지식과 당시의 상식으로 볼 때, 나사렛에서 메시아가 나온다는 말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4. 그런데 오늘 묵상하는 말씀은 놀라운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날 수 없다고 말했던 나다나엘이 빌립을 따라 예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

 

5. 그리고 자신에게 오는 나다나엘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향해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6. 요한복음 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7.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나사렛 같은 변방에서는 결코 메시아가 나올 수 없다고 반문했던 나다나엘이 도대체 왜 예수님을 찾아간 것일까요?

 

8. 그것은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에 대한 나다나엘의 의심이 단순한 불신앙이나 조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9. 그의 마음에는 시대의 어둠을 아파하며 참된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는 진실한 갈망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10. 그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말했지만, 빌립이 “와서 보라”고 초대했을 때 실제로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11. 이것이 나다나엘이 가진 아름다운 점입니다. 그는 비록 나사렛 예수에 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편견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겸손과 간절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12. 참된 믿음은 의심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의심 속에서도 주님께 나아가는 용기입니다. 질문이 있어도 도망치지 않고, 불편함이 있어도 진리 앞에 서 보려는 정직함입니다.

 

13. 우리에게도 이런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낯선 땅에서 부정적인 경험을 통해 방어적인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먼저 판단하고, 실망하지 않으려고 먼저 거리를 둡니다.

 

14. 그러나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나다나엘의 길을 보여 주십니다. 의심이 있어도 와 보라. 질문이 있어도 와 보라. 편견이 있어도 그 자리에서 멈추지 말고 주님께 나아오라고 하십니다.

 

15. 예수님은 자기에게 오는 나다나엘을 보시고는 단번에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16.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부르신 이유를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기원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17. 이스라엘은 본래 야곱에게 주어졌던 새로운 이름입니다. 야곱의 인생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형을 속이고 아버지마저 속였던 치사한 인생이었습니다.

 

18. 속고 속이며 살던 치사한 인생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을 붙잡고 끈질기게 씨름한 끝에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습니다.

 

19. 따라서 참 이스라엘 사람은 자기 꾀와 거짓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씨름하며 그분을 구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20. 나다나엘을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부르신 예수님은, 이어서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1. 여기서 간사하다는 것은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함정을 파거나 자신을 거짓으로 꾸미는 위선과 교활함을 의미합니다.

 

22.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나다나엘에게 간사함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23. 나다나엘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편견도 있었고 의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생각을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았습니다.

 

24.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는 나다나엘의 말은 가식 없는 솔직함이었습니다. 겉으로 믿는 척하면서 속으로 다른 생각을 품지 않았습니다.

 

25. 이것이 간사함 없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의심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겉으로만 믿는 척하는 것보다 더 진실된 신앙입니다.

 

26.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큰 위로이자 동시에 도전이 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편견 없는 사람만, 의심 없는 사람만 부르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짓과 위선은 내려놓기를 원하십니다.

 

27. 우리는 종종 너무 빨리 괜찮은 척합니다. 믿음 좋은 척하고, 상처 없는 척하고, 흔들리지 않는 척합니다.

 

28.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종교적 포장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간사함 없는 정직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29. 작은 이민교회는 서로를 오래 보며 가까이 지내기에, 때로는 더 많은 가면을 쓰게 됩니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실망하게 할까 봐, 질문을 드러내면 믿음 없다고 여겨질까 봐, 상처를 말하면 불편해질까 봐 감추고 숨깁니다.

 

30. 그러나 건강한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질 수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의심이 있는 사람도 주님께 나아올 수 있고, 상처가 있는 사람도 숨지 않아도 되는 곳입니다.

 

31. 요한복음을 읽는 사람들은 나다나엘의 편견을 보았을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그 안에 있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진실한 갈망을 보셨습니다.

 

32.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람은 우리의 말실수와 부족함을 먼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감추어진 우리의 내면 깊은 곳을 보십니다.

 

33. 다른 사람의 한마디만 듣고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맙시다. 누군가의 거친 질문 뒤에,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갈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34.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보신 것처럼 우리도 사람의 겉모습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그런 믿음의 사람으로 함께 자라가기를 바랍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우리의 중심을 감찰하시며 참된 생명으로 이끄시는 하나님 아버지, 낯선 이민의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때로는 가면을 쓰고, 때로는 상처를 감추며 살아왔던 우리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의 의심과 연약함 너머에 있는 진리를 향한 갈망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니 우리를 진리와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교회가 위선과 가식을 벗어버리고 상처 입은 모습 그대로 서로를 품어주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