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 목요일-나를 아시는 주님, 나의 왕 되시는 주님
요한복음 1:48-49
요1: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요1: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1. 새로운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진리와 은혜의 자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2. 어제 묵상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보시고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며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하신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3. 나다나엘에게는 의심이 있었습니다. 편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의심을 숨기고 믿는 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직하게 질문했고, 와서 보라는 빌립의 초대에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4. 오늘 묵상하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알아보신 것에 놀란 나다나엘의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5. 요1: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6. 어떻게 나를 아시냐고 묻는 나다나엘의 질문은 예수님께서 자기 속마음까지 아시는 분임을 느꼈기 때문에 나온 놀라움의 질문입니다.
7.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처음 만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그를 알고 계셨습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알기 전에, 예수님은 이미 나다나엘을 알고 계셨습니다.
8. 이것이 복음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찾아가는 사람인 줄 알지만, 사실은 예수님께 먼저 발견된 사람입니다.
9. 어떻게 나를 아시느냐는 나다나엘의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10. 요1:48b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11. 여기서 무화과나무 아래라는 공간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평화와 쉼의 이미지와 연결됩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이 자리를 말씀 묵상과 기도의 자리로 보기도 합니다.
12. 또한 성경에서 무화과나무는 평화와 안식, 하나님이 주시는 안전한 삶의 이미지와 연결됩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아래 앉는 모습은 두려움 없는 삶과 평안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13.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장소의 의미보다, 예수님께서 아무도 보지 못한 나다나엘의 숨은 자리를 보셨다는 사실입니다.
14. 예수님은 빌립이 나다나엘을 부르기 전,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오기 전, 이미 그를 보고 계셨습니다.
15. 무화과나무 아래는 나다나엘에게만 알려진 자리였을 것입니다. 그의 생각, 그의 질문, 그의 기다림, 그의 외로움, 그의 진실한 갈망이 머물던 자리였을 것입니다.
16. 그런데 예수님은 그가 홀로 머물던 자리를 보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초자연적 능력의 과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의 깊은 내면에 있는 갈망까지도 아신다는 뜻입니다.
17.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깊은 위로가 됩니다. 우리에게도 자기만의 무화과나무 아래가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눈물의 자리, 혼자 견딘 불안의 자리, 말하지 못하는 고뇌의 자리입니다.
18. 이민자의 삶에는 이런 자리가 많습니다. 가족을 위해 괜찮은 척했던 자리, 신분과 생계와 자녀의 미래 때문에 밤새 마음이 무너졌던 자리, 교회에서도 쉽게 말하지 못했던 자리가 있습니다.
19. 그러나 주님은 그 자리를 보십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도, 내 마음의 문장을 다 말하지 못해도, 주님은 이미 보고 계십니다.
20. 이미 자신에 대해 잘 알고 계신다는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나다나엘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21. 요1: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22. 얼핏 나다나엘의 고백은 갑작스러워 보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반문했기 때문입니다.
23. 그런데 이제 그는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고백합니다.
24. 나다나엘은 왜 이렇게 달라진 것일까요? 그는 예수님에게서 단순히 지식 많은 랍비를 본 것이 아닙니다. 자기 영혼의 깊은 곳까지 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본 것입니다.
25. 나다나엘은 자신을 온전히 아시는 참된 구원자를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26. 그런데 예수님을 향한 나다나엘의 고백은 하나님의 아들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임금이라는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27. 요한복음 1장에서는 지금까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 랍비,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다나엘은 여기에 이스라엘의 임금이라는 고백을 더한 것입니다.
28. 이스라엘의 임금이라는 나다나엘의 고백은 예수님을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시는 통치자로 영접하겠다는 결단입니다.
29. 예수님을 임금으로 고백하는 것은 세상의 낡은 가치관을 내려놓고, 사랑과 정의와 평화로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길에 응답하며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30. 그러나 예수님의 통치는 세상의 왕처럼 사람 위에 군림하는 통치가 아니라, 사람을 깊이 아시고 살리시는 사랑의 통치입니다.
31.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왕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내 소원을 들어주는 분으로만 여깁니까? 내 불안을 해결해 주는 분으로만 찾습니까? 아니면 내 삶의 방향과 가치와 선택을 다스리시는 주님으로 고백합니까?
32. 치열한 이민 생활 속에서, 때로는 돈과 성공, 신분과 체면, 심지어 두려움이라는 거짓된 왕들이 우리 마음을 다스리려 합니다.
33.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나다나엘처럼, 내 삶의 진짜 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정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34. 주님 앞에 정직하게 서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숨은 자리까지 아시는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 삶의 참된 왕으로 고백하며 주님의 통치를 따라 살아갑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품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낯선 이민의 땅에서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외롭고 지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 아래의 나다나엘을 찾아오신 주님께서 우리의 눈물과 정직한 기도를 보고 계심을 믿습니다. 세상의 거짓된 권력과 물질을 왕으로 섬기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우리 삶과 우리 교회의 진정한 임금으로 모시고 주님이 다스리시는 사랑과 정의의 길을 걸어가게 하옵소서. 우리를 가장 깊이 이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