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일 월요일-하나님께는 사흘째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2:1a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1.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합니다. 오늘도 끝나지 않은 기다림 속에서 새 일을 이루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이 우리 모두의 일상 가운데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2. 지난 묵상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약속하신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3.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이어 주시며,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참된 자리이십니다.
4. 그리고 요한복음 2장은 매우 인상적인 시간의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요2:1a 사흘째 되던 날
5.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첫 표적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굳이 ‘사흘째 되던 날’이라고 날짜를 기록했습니다.
6. 요한복음에서 날짜는 사건이 일어난 순서를 알려 주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보여 주는 영적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7. 우선 사흘째 되던 날은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이 빌립과 나다나엘을 만난 날로부터 사흘째 되는 날이라는 시간적 의미를 나타냅니다.
8. 그런데 요한복음 1장에서는 “이튿날”이라는 표현을 세 번(29절, 35절, 43절)이나 반복하여 예수님의 첫 사역을 하루하루 세어 왔습니다.
9.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언한 날, 첫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간 날, 빌립과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난 날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이어집니다.
10. 요한복음 1장의 날짜 배열과 2장 1절의 사흘째를 연결할 때 예수님의 첫 표적은 요한복음이 시작한 첫 주간의 일곱째 날에 놓입니다.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요한복음을 시작하는 첫 구절은 창세기의 첫 구절인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를 떠올리게 합니다.
12.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13. 요한복음의 이러한 날짜 배열은 창조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일곱째 날의 이미지 속에서 첫 표적을 행하시며, 새로운 창조의 기쁨을 드러내시는 장면으로 읽게 합니다.
14. 이것은 요한복음이 소개하는 예수님이 단순히 놀라운 기적을 행하는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15. 예수님은 낡은 세상을 조금 고쳐 주시는 분이 아니라, 죄와 죽음으로 일그러진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시는 분입니다.
16. 더 나아가 사흘째라는 표현은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을 것입니다.
17. 물론 요한복음 2장 1절의 사흘째를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직접적인 예언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18. 그러나 요한복음은 바로 이어지는 2장 19절부터 22절에서 “사흘”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명확하게 연결합니다.
19.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신 뒤,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며 표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0. 요2:19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1.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돌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을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22. 사람들이 예수님의 몸을 십자가에서 무너뜨리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사흘 만에 죽음을 이기고 다시 일어나실 것입니다.
23. 물론 제자들은 당시에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에야 그 말씀을 기억하고 믿게 되었습니다.
24. 그러므로 요한복음 전체를 읽는 독자에게 “사흘째 되던 날”은 단순히 달력에 표시된 어느 날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25. 그것은 죽음 너머에 생명이 있고, 무너진 것을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음을 암시하는 시간입니다.
26. 성경에서 사흘째는 인간의 가능성이 끝났다고 여겨지는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새 일을 시작하시는 때로 자주 등장합니다.
27. 부활의 믿음은 고난이 빨리 끝날 것이라고 낙관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고난과 죽음과 절망이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 될 수 없음을 믿는 것입니다.
28. 이민 생활은 때때로 끝이 보이지 않는 둘째 날처럼 느껴집니다. 첫날의 기대는 사라졌지만, 아직 새로운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29. 신분 문제와 생계의 부담, 언어의 장벽과 자녀에 대한 걱정,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길어질 때 우리는 지금의 현실이 영원할 것처럼 낙심합니다.
30. 그러나 오늘 말씀은 둘째 날이 하나님의 마지막 날이 아니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는 사흘째가 있습니다.
31.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기다림 속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절망 속에서도 생명의 길을 만들어 가십니다.
32. 그러므로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에 너무 빨리 마침표를 찍지 맙시다. 내가 실패했다고, 우리 가정은 틀렸다고, 교회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단정하지 맙시다.
33. 십자가가 마지막처럼 보였지만 부활의 아침이 찾아왔습니다. 무덤이 예수님의 마지막 자리가 될 수 없었던 것처럼, 오늘의 절망도 하나님께서 쓰시는 마지막 문장이 될 수 없습니다.
34. 둘째 날의 어둠을 지나고 있다면 사흘째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35. 보이지 않아도 일하시고 무너진 자리에서도 새 창조를 시작하시는 주님을 바라봅시다. 오늘도 부활의 소망으로 한 걸음을 내딛읍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
죽음의 절망을 깨뜨리고 사흘째 되는 날 부활하신 주님, 끝나지 않는 기다림 속에서 너무 쉽게 낙심하고 절망했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가 원하는 시간과 방식만을 고집하지 않게 하시고,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새 일을 이루시는 주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죽음과 절망이 하나님의 마지막 말이 될 수 없음을 믿으며, 오늘도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하옵소서. 부활과 새 창조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