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7일 월요일-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습니까?
요한복음 3: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1. 새로운 한 주의 일상을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묵상을 통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새롭게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2. 지난 묵상에서 우리는 거듭남이 자신의 힘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임을 살펴보았습니다.
3.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4. 요3: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니고데모의 질문은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처럼 들립니다. 사람은 젊든 늙든 어머니의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6. 율법에 정통하고 많은 사람을 가르치던 니고데모가 정말로 육체적인 두 번째 출생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리는 없습니다.
7. 따라서 그의 질문은 단순히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잘못 알아들은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완전히 넘어섰다는 당혹감을 나타낸 질문입니다.
8. 이 질문에는 “나는 이미 다 자랐는데 어떻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습니까?”라는 당혹감이 담겨 있다고도 읽을 수 있습니다.
9. 예수님은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셨지만, 니고데모는 자신이 익숙하게 알고 있던 육체적인 탄생의 틀 안에서 그 말씀을 이해하려고 한 것입니다.
10. 이것은 요한복음에 자주 나타나는 대화의 특징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생명과 하나님의 은혜를 말씀하시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눈에 보이는 현실과 익숙한 경험 안에서만 이해합니다.
11. 예수님이 성전을 다시 일으키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은 돌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을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생수를 말씀하셨을 때 사마리아 여인은 우물에서 길어 올리는 물을 생각했습니다.
12. 니고데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시작되는 새로운 존재를 말씀하셨지만, 그는 다시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나는 일을 생각한 것입니다.
13. 니고데모의 문제는 지식이 부족했다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14.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으로 고백했지만, 예수님을 자신의 익숙한 신앙과 지식 안에서 이해하려 했습니다.
15. 한 번 육체로 태어난 사람은 그가 아기든 성인이든 늙은이든 육체적으로 어머니 모태에 들어가서 다시 태어날 수 없습니다.
16. 이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니고데모는 왜 굳이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모태에 들어갈 수 있냐고 물은 것일까요?
17. 물론 요한복음은 여기에 대해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니고데모가 자신과 같이 인생을 오래 살아온 사람을 떠올렸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18. 다시 말해 “늙으면”이라는 표현을 통해 그는 예수님의 말씀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임을 드러냅니다.
19. 또한 니고데모의 질문에는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인간의 깊은 의문과 두려움이 담겨 있다고도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살아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이 변할 가능성을 믿기 어려워합니다.
20. 오랫동안 굳어진 성격, 반복된 실패, 깊어진 상처와 익숙한 관계의 방식 때문에 말합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입니다. 이 나이에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너무 늦었습니다.
21. 니고데모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은 사실 오늘 우리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22. 우리는 신앙생활을 오래 했지만, 여전히 같은 일에 분노하고, 같은 사람을 미워하며, 같은 두려움과 욕망에 붙들려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23.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이라는 말씀은 희망이 아니라 부담처럼 들립니다. 지금까지도 변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느냐고 묻게 됩니다.
24. 그러나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자기 힘으로 자신을 거듭나게 하라고 요구하신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과거를 지우고 처음부터 인생을 다시 만들라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25.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에게 불가능한 새로운 시작을 위로부터 오는 성령께서 가능하게 하십니다.
26.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거를 없었던 일로 만들거나 다른 사람이 되는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과거와 상처와 실패 속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도록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27. 이민자의 삶에도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찾아옵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고, 직업을 바꾸거나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느낍니다.
28. 자녀와의 거리가 깊어지고 부부 사이에 오래된 상처가 쌓이면, 인제 와서 관계가 달라질 수 있겠느냐고 체념하기도 합니다.
29. 그러나 성령께서는 나이와 경력, 실패의 횟수에 갇히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은 백지에서만 시작되지 않습니다. 주름지고 상처 입고 수많은 이야기가 적힌 우리의 삶에서도 시작됩니다.
30. 새로운 생명은 지금까지의 나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참된 나로 살아가게 합니다. 내가 쌓은 성공과 실패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의 정체성을 결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31. 니고데모의 오해는 단순한 지식의 실수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새로운 일을 자신이 경험한 가능성의 범위 안에서만 생각하고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32. 우리도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하실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그 방법은 내가 이해하고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33. 그러나 믿음은 모든 것을 이해한 뒤에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익숙한 생각보다 더 크신 분임을 신뢰하며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34. 다시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사람은 없습니다. 새로운 생명은 우리의 나이와 능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새 일을 시작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35. 오늘도 익숙한 생각의 울타리를 열고, 우리 안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는 성령의 일하심에 믿음으로 응답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새 일을 시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래된 습관과 상처를 바라보며 나는 변할 수 없다고 체념했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의 익숙한 생각과 경험으로 주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게 하시고,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위로부터 새 생명을 주시는 은혜를 신뢰하게 하옵소서. 너무 늦었다고 포기했던 마음과 관계를 성령의 손에 맡기며, 오늘 다시 사랑하고 다시 소망하는 용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