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목요일-통제할 수 없는 바람, 예측할 수 없는 은혜
요한복음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1. 새로운 아침을 열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묵묵히 수고하며 살아가는 모든 교우님의 가정과 일터 위에 주님의 평안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2. 어제 묵상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육으로 난 것과 영으로 난 것을 구분하시며, 육체의 한계와 생존 논리를 넘어 성령으로 새로워져야 한다는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3. 오늘 묵상하는 말씀에서 예수님은 영으로 난 사람은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를 매우 직관적이고 아름다운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4. 요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5. 예수님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영적 과정을 바람에 비유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람을 비유로 드신 데에는 깊은 언어적,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6. 신약성경에서 ‘바람’과 ‘성령’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모두 ‘프뉴마’라는 같은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 바람, 숨결, 영이라는 뜻으로 번역됩니다.
7. 예수님은 한 단어에 담긴 두 의미를 사용하여 보이지 않는 성령의 역사를 바람으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8. 바람과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람 자체를 볼 수 없지만,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피부에 닿는 기운을 통해 바람이 불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9. 성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에 들어오시는 순간이나 새 생명을 일으키시는 과정을 눈으로 관찰하거나 과학적으로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10. 그러나 미움에 굳어 있던 사람이 용서를 선택하고, 자기 이익만 생각하던 사람이 이웃의 고통을 돌아보기 시작할 때 우리는 성령께서 일하고 계심을 발견합니다.
11. 두려움에 침묵하던 사람이 진리를 말하기 시작하고, 절망에 주저앉았던 사람이 다시 사랑하고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면 그것은 성령의 바람이 우리에게 남긴 흔적입니다.
12. 예수님은 바람이 임의로 분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바람이 아무 원칙 없이 변덕스럽게 분다는 뜻이 아닙니다.
13. 성령께서 인간의 계획과 지식, 제도와 통제에 갇히지 않고 하나님의 자유로운 뜻에 따라 일하신다는 의미입니다.
14.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가 기대한 사람, 내가 정한 시간, 내가 익숙한 방법으로만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의 작은 계획에 자신의 길을 맞추지 않으십니다.
15.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이 익숙하게 알고 있던 종교적 지식과 율법의 틀 안에서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의 역사하심은 그의 오래되고 익숙한 생각보다 훨씬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16. 바람은 부유한 사람의 창문과 가난한 사람의 창문을 구별하지 않으며, 종교와 신분의 경계 앞에서 멈추지도 않습니다.
17. 성령의 역사도 이와 같습니다. 성령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의롭다고 인정받는 사람이든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이든, 가진 자든 못 가진 자든 인간의 조건이나 자격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십니다.
18. 그러므로 교회는 성령께서 누구를 통해 일하실지를 미리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새로 온 사람, 질문이 많은 사람, 신앙의 언어가 아직 낯선 사람을 통해서도 성령께서 공동체를 깨우실 수 있습니다.
19. 더 나아가 예수님은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성령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전혀 모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20. 성령은 하나님께로부터만 오십니다. 다만 성령께서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통해 어떤 일을 시작하실지를 인간이 모두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21. 바람의 모든 경로를 손에 쥘 수는 없지만, 그 소리와 흔적은 알아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모든 길을 설명할 수는 없어도,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생명의 소리와 열매는 알아볼 수 있습니다.
22. 성령의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실, 정의와 평화, 긍휼과 용기가 자라납니다. 성령의 역사는 개인의 황홀한 체험에 머물지 않고 사랑과 순종, 이웃을 섬기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23. 반면에 사람을 두려움으로 억압하거나 우월감과 증오를 키우는 일은 아무리 종교적인 언어를 사용해도 성령의 열매라 할 수 없습니다.
24. 그렇다면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다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25. 이것은 성령으로 난 사람이 어디로 움직일지 모르는 변덕스러운 사람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새 생명의 시작과 과정은 인간의 혈통과 능력, 종교적 제도로 설명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26. 바람 자체는 보이지 않아도 흔들리는 나뭇가지로 그 존재를 알 수 있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의 생명도 사랑과 용서, 정의와 평화의 열매를 통해 드러납니다.
27. 성령으로 난 사람의 자유는 자기 마음대로 사는 자유가 아니라, 세상의 평가와 두려움에 붙들리지 않고 성령의 인도에 순종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28. 오늘 묵상하는 이 말씀은 미국 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29. 이민의 삶에는 불안하고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순간이 많습니다. 언어의 장벽과 불안정한 체류 신분, 낯선 문화와 차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든 삶을 안전하게 계획하고 통제하려고 애씁니다.
30. 미래를 준비하고 가족의 안전을 위해 계획하는 것은 소중한 책임입니다. 그러나 계획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도구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절대적인 울타리가 될 때 문제가 시작됩니다.
31. 때로는 신앙과 기도마저도 내 계획이 어긋나지 않도록 하나님을 설득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32. 계획이 무너지고 통제할 수 없는 위기가 찾아올 때 깊은 두려움에 빠지는 것은, 그만큼 생존의 논리가 우리 마음을 깊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33.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책임과 계획을 포기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삶을 내 뜻대로만 조종하려는 무거운 통제권을 이제 내려놓으라고 권면하십니다.
34.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삶을 무책임하게 방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세운 계획의 노를 젓느라 탈진하는 대신, 위로부터 불어오는 성령의 바람에 삶의 돛을 펼치는 것입니다.
35. 비록 그 길이 편안하거나 예상한 길이 아닐지라도, 어떤 자리에서도 우리를 사랑과 생명의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36. 오늘 하루도 내가 단단히 쥐고 있는 통제의 끈을 풀고, 자유롭고 생명력 넘치는 성령의 바람에 삶의 돛을 펼치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생명의 숨결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날을 알 수 없는 이민의 삶에서 불안을 이겨 보려고 모든 것을 내 뜻대로 통제하려 했던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때로는 신앙과 기도마저 내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삼으려 했던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굳게 닫아 둔 마음의 창문을 열어 성령의 바람을 맞게 하옵소서. 내가 원하는 길만 고집하지 않고, 주님께서 이끄시는 사랑과 생명의 길을 향해 자유롭고 담대하게 나아가기를 바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