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1일 금요일-이해되지 않아도 물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 새로운 하루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인생과 신앙의 답을 다 알지 못해도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2. 어제 묵상에서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바람에 비유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3. 비록 바람은 눈으로 볼 수는 없어도 그 소리와 흔적은 알아볼 수 있듯이, 성령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다 설명할 수는 없어도 그분이 맺으시는 생명의 열매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4.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인간의 노력과 자격만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며,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5. 그러나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당혹스러운 질문을 던집니다.
6. 요3: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7. 여기서 니고데모가 말한 그러한 일은 무엇입니까?
8.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일, 육으로 난 사람이 성령으로 새로워지는 일,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성령의 바람이 새 생명을 일으키는 일을 가리킵니다.
9. 니고데모의 질문을 어리석은 불신앙으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는 이해되지 않는 말씀 앞에서 아는 척하지 않고 자신의 당혹감을 정직하게 드러냈습니다.
10. 그는 율법에 정통하고 백성을 가르치는 이스라엘의 선생이었습니다.
11.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은 그의 평생의 지식과 상식만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신비였습니다.
12. 그의 질문에는 자신이 평생 의지해 온 종교적 경력과 지식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깊은 당혹감이 묻어 있습니다.
13. 동시에 하나님의 새 생명을 받아들이기 전에, 먼저 그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알고 이해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마음이 엿보입니다.
14. 이것은 오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그 은혜가 내가 이해하고 예상하는 방법으로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15. 오랫동안 굳어진 성격을 바라보며 묻습니다. “내가 정말 달라질 수 있습니까?”
16. 상처가 깊어진 부부와 자녀의 관계를 바라보며 묻습니다. “이미 이렇게 멀어졌는데 다시 가까워질 수 있습니까?”
17.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라는 니고데모의 질문은 믿음으로 들어가는 문이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을 거절하는 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18. 이해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 계속 듣고자 한다면 질문은 믿음의 문이 됩니다.
19. 그러나 내가 모든 것을 이해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고집한다면 질문은 마음을 가두는 벽이 됩니다.
20. 믿음은 이성이나 지식을 포기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과 지식은 소중하며, 교회는 질문을 억누르지 말고 함께 생각하고 분별해야 합니다.
21. 그러나 바다를 작은 컵 안에 모두 담을 수 없듯이, 하나님의 생명을 인간의 지식 안에 다 가둘 수는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2.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완전히 설명하기 전에 먼저 경험할 때도 있습니다.
23. 이전까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던 사람을 위해 어느 날 기도하기 시작하고, 절망했던 사람이 다시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24. 그 변화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25. 하지만 우리는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고 바람이 불었다는 사실을 알듯이 그 사람 안에 성령께서 일하고 계심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26.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라고 묻고 싶은 순간이 너무나 많습니다.
27.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체류 신분의 문제가 풀리지 않고, 안정된 줄 알았던 직장이 흔들리며, 자녀가 부모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28. 그때 우리는 모든 일이 왜 일어났으며 언제 해결될지를 하나님께 묻고 또 묻게 됩니다. 일의 결과와 방향을 다 알아야만 비로소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9.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모든 질문에 즉시 답을 얻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답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질문을 품고 하나님 곁에 머무는 것입니다.
30. 그렇다고 “하나님의 일은 신비합니다”라는 말로 사람의 고통이나 사회의 불의를 덮어서는 안 됩니다.
31. 신앙의 신비를 믿는다는 것은 질문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면서도 사랑과 정의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32. 교회는 질문을 믿음 없음으로 정죄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확신에 찬 사람뿐 아니라 “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안전하게 머물 수 있어야 합니다.
33.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대화를 중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그의 한계를 지적하시면서도 질문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를 더 깊은 진리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34. 다만 질문에는 들을 준비가 필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답만 기다린다면 아무리 질문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35. 따라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라는 질문에서만 멈추지 말고 “주님은 지금 어디에서 새 일을 시작하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을 하나 더해 보시길 바랍니다.
36. 답을 모두 알지 못해도 우리보다 먼저 일하시는 은혜를 신뢰하며, 질문을 품은 채 성령의 생명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우리의 질문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해되지 않는 일들 앞에서 쉽게 절망하거나 마음의 문을 닫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의 작은 지식 안에 주님의 은혜를 가두지 않게 하시고, 답을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주님 곁에 머물게 하옵소서. 오래되어 달라질 수 없다고 포기한 삶과 관계 속에서도 새 일을 시작하시는 성령을 신뢰하며, 질문하면서도 사랑과 소망을 놓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