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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4일 월요일-익숙한 지식이 은혜를 가로막는 벽이 될 때

8월 24일 월요일-익숙한 지식이 은혜를 가로막는 벽이 될 때

 

요한복음 3:10-11

요3: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요3: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 새로운 한 주의 일상을 시작합니다. 오늘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묵상을 통해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2. 지난 묵상에서 우리는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한 니고데모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3. 그의 질문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싶은 진지한 갈망이 있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일을 자신의 지식과 경험 안에서 이해하려는 한계도 있었습니다.

 

4. 오늘 묵상하는 말씀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질문 뒤에 놓인 더 깊은 문제를 드러내십니다.

 

5. 요3: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6. 예수님은 니고데모를 향해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지도자였습니다.

 

7.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지위를 인정하시면서도, 이스라엘의 선생인 그가 하나님께서 백성을 새롭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깨닫지 못한 사실을 책망하십니다.

 

8. 니고데모는 하나님께서 맑은 물로 백성을 씻으시고, 굳은 마음을 제거하여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겠다고 하신 에스겔서의 말씀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9. 그는 그 말씀을 읽고 가르쳤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물과 성령의 새 생명이 그 예언의 약속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10. 이것을 성경에 관한 지식이 신앙에는 아무런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11. 성경을 배우고 연구하는 것은 매우 소중합니다. 문제는 성경 지식이 하나님의 새로운 일을 알아보는 창문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이나 기대에 맞지 않는 것을 차단하는 벽이 될 때입니다.

 

12. 우리는 성경 말씀을 많이 알고, 설교를 오래 듣고, 교회의 언어에 익숙해지면 하나님도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13. 그러나 신앙의 위기는 알지 못하는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이상 듣지 못하는 데에도 있습니다.

 

14. 이어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더욱 엄숙하게 말씀하십니다.

 

15. 요3: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6.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이 알고 본 것을 증언하시는 분과, 그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대조하십니다.

 

17. 요한복음에서 ‘증언’은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증언했고, 예수님의 표적과 하나님 아버지와 성경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증언합니다.

 

18. 예수님은 우리에게 더 많은 종교 정보를 주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증언하시며, 우리를 그 생명 안으로 초대하십니다.

 

19. 또한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아니라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문제를 니고데모 한 사람에게만 돌리지 않고, 그가 속한 종교 공동체로 넓히신 것입니다.

 

20. 그들 가운데에는 익숙한 전통과 기준에 갇혀 예수님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많이 안다고 생각한 지식이 오히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21.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알다”와 “받아들이다”의 차이입니다. 안다는 것은 정보를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이지만,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말씀이 나의 기준과 삶을 변화시키도록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22. 우리는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을 잘 알면서도, 정작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차갑게 밀어냅니다.

 

23.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고백하면서도, 교회 안에서는 사람의 학력과 재산, 직분과 봉사 능력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를 다르게 평가합니다.

 

24.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음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교회 안에서 높은 자리와 영향력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씁니다.

 

25. 이처럼 성경을 많이 안다는 사실과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의 길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26. 우리는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고 성경 말씀을 들어 왔기 때문에 하나님을 이미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27. 그러나 전통과 관습을 복음 자체와 동일시하면 문화와 언어가 다른 다음 세대의 질문과 하나님께서 이웃을 통해 들려주시는 새로운 도전을 밀어낼 수 있습니다.

 

28. 신앙의 깊은 위기는 진리를 모르는 무지에만 있지 않습니다.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하여 성령께서 오늘 우리에게 새롭게 깨닫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데에도 있습니다.

 

29. 많이 가르쳐 온 사람일수록 다시 배우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참된 선생은 모든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진리 앞에서 계속 배우는 사람입니다.

 

30. 그렇다고 새롭고 낯선 주장이라면 무엇이든 성령의 음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31. 예수님의 증언과 일치하는지, 사랑과 진실, 정의와 평화의 열매를 맺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32. 증언을 받아들이는 믿음은 비판적인 사고를 버리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편견까지 의심하면서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기준으로 더 깊이 분별하는 일입니다.

 

33.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 깨닫지 못한 니고데모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완고함을 드러내시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다시 듣고 배우며 변화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십니다.

 

34. 오늘 내가 이미 잘 안다고 생각하여 끝까지 듣지 않았던 한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사람의 말에 모두 동의하지 않더라도 판단을 잠시 멈추고 귀 기울여 보십시오.

 

35. 우리의 익숙한 지식이 은혜를 막는 벽이 되지 않도록, 굳어진 마음에 새로운 창문을 열어 주시기를 성령께 간구해야 합니다.

 

36. 신앙은 많이 아는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예수님의 증언을 받아들여 삶이 새로워지는 길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진리의 빛이신 하나님 아버지,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 이상 듣지 못했던 우리의 완고함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성경에 관한 지식이 사람을 판단하는 벽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바라보는 창문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와 다른 세대와 문화, 낯선 질문 속에서도 주님의 음성을 분별하게 하시고, 아는 것에 머물지 않고 예수님의 증언을 받아들여 사랑과 정의의 삶으로 응답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