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7일 목요일-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신 세상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시고 도우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 후회 없는 복된 하루를 살아내시길 바랍니다.
2. 어제 묵상에서 우리는 광야에 높이 들린 놋뱀처럼 인자도 십자가에 들려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3.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고통을 멀리서 설명하신 사건이 아니라, 그 고통 한가운데로 직접 들어오신 사건이었습니다.
4. 오늘 묵상하는 말씀은 그 십자가를 가능하게 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5.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요한복음 3장 16절은 기독교의 핵심을 한 구절에 담고 있어서 흔히 ‘작은 복음서’라고 불립니다. 그래서 많은 교인이 암송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7.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그 안에 담긴 파격적인 은혜를 무감각하게 지나쳐 버리기 쉽습니다.
8. 오늘 묵상하는 말씀을 다시 읽어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교회 안의 사람들에게만 머물지 않고 온 세상을 향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9. 여기서 세상은 단지 아름답고 선한 창조 세계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거역하며, 폭력과 불의로 깨어진 인간 세상까지 포함합니다.
10. 그런데 하나님은 그처럼 깨어지고 하나님을 외면하는 세상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격과 공로를 따져 사랑의 대상을 고르지 않으셨습니다.
11. 이것이 복음의 첫 번째 파격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독점적인 특권이 아니라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시는 온 세상을 향한 사랑입니다.
12.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상, 곧 우리가 마주하는 사회와 일터는 종종 차갑고 긴장된 곳입니다.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하고, 살아남기 위해 매일 발버둥 쳐야 하는 치열한 생존의 현장입니다.
13.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안고 교회라는 안전한 울타리로 도피하려 합니다. 실제로 교회는 세상에서 지친 영혼이 쉬고 위로받으며 다시 힘을 얻는 은혜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14. 그러나 피난처가 어느 순간 요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벽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밀어내는 벽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15. 교회는 하나님 사랑의 최종 목적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을 향해 흘러가는 통로입니다.
16. 교회는 세상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의 폐쇄된 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세상으로 다시 파송 받는 공동체입니다.
17. 요한복음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선언합니다.
18. 여기서 “이처럼”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셨는지만이 아니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보여줍니다.
19. 하나님의 사랑은 멀리서 세상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독생자를 세상에 내어 주시는 구체적이고 값비싼 방식으로 사랑을 나타냈습니다.
20.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통과 수치, 외로움과 죽음에 끝까지 연대하신 사건입니다.
21. 하나님은 독생자를 희생시키고 멀리 서 계신 분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의 고통을 몸소 짊어지신 분입니다.
22. 여기서 “그를 믿는 자마다”라는 말씀도 교회 안과 밖을 나누는 비밀번호가 아닙니다. 믿는다는 것은 교리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를 시험받는 일이 아닙니다.
23. 믿음은 광야에서 죽어 가던 사람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생명의 길을 바라보았듯이, 자신의 생명을 예수님의 사랑에 맡기는 것입니다.
24. 그렇다면 멸망은 무엇입니까? 멸망을 죽은 뒤 지옥에 가는 문제로만 축소할 수 없습니다. 멸망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25. 그 멸망의 그림자는 오늘의 삶에서도 나타납니다. 살아남는 일에만 매달린 나머지 이웃을 향한 긍휼을 잃고, 불안과 경쟁 속에서 자신의 존엄까지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26. 마음에는 평안이 없고, 재산은 많아도 관계는 무너지며, 교회에는 다니지만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것도 생명이 말라 가는 멸망의 모습입니다.
27. 반대로 영생은 죽은 뒤 끝없이 오래 사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영생은 불안과 경쟁으로 소진된 삶이 끝없이 연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28.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의 존엄을 발견하고, 두려움보다 사랑을 선택하며,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함께 돌보는 삶입니다.
29. 하나님과 연결된 영생은 우리의 관계와 선택 속에서도 열매를 맺습니다. 받은 사랑을 따라 시간과 물질, 관심과 능력을 누군가를 살리는 일에 내어 줄 때, 영생의 숨결이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납니다.
30. 이것은 이웃을 돌보는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돌보았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31. 또한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것은 세상의 불의와 폭력을 아무 조건 없이 승인하셨다는 뜻도 아닙니다. 참된 사랑은 악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32.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가 폭력을 당하거나 불의한 일에 휩쓸릴 때 결코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기에 세상의 상처와 불의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33.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차별받는 사람의 존엄을 지키고, 폭력에 침묵하지 않으며, 사람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제도에 맞섭니다.
34. 따라서 교회가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사람들의 삶으로 들어가 그들의 눈물을 닦고, 외로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며, 억눌린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35. 거창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웃이나 동료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들어 주고, 필요한 도움을 함께 찾으며, 나의 시간 일부를 내어 주는 데서 하나님의 사랑은 구체적인 몸을 입습니다.
36. 하나님께서 교회만이 아니라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놀라운 복음을 품고, 오늘 우리가 만나는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따뜻하게 돌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 익숙한 말씀 속에 담긴 놀라운 은혜를 다시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끼리의 안전과 위로에만 머물지 않고, 주님께서 사랑하신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시간과 마음과 손길을 내어 주어 지친 이웃을 돌보며, 차별과 불의 앞에서 생명과 존엄을 지키게 하옵소서. 먼저 받은 사랑으로 오늘 누군가를 살리는 영생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