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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8일 금요일-세상을 살리러 오신 주님

8월 28일 금요일-세상을 살리러 오신 주님

 

요한복음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 새로운 하루를 열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오늘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가장 존귀한 생명의 길로 이끄시는 주님의 은혜 안에서 복된 하루를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2. 어제 묵상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외면하고 거역하는 세상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독생자를 주셨다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3. 오늘 묵상하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더욱 분명하게 밝혀 주는 말씀입니다.

 

4. 요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5.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은 세상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6.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운 심판관으로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시다가 우리가 잘못하면 어김없이 벌을 내리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7. 율법을 어기면 멀어지고, 기도하지 않으면 외면하시며, 실패하면 더 이상 사용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두려워합니다.

 

8. 비즈니스가 갑자기 어려워지거나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면,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해서 혹은 십일조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하나님이 벌을 주신다고 자책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9.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은 세상을 심판하고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0.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근본 목적은 세상을 정죄하여 버리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상처 입고 죽어 가는 세상을 그 아들을 통해 구원하는 데 있었습니다.

 

11. 하나님은 불타는 집 앞에서 누가 불을 냈는지부터 따지는 분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불타는 집으로 들어가 갇힌 사람을 구해 내시는 분입니다.

 

12.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죄와 불의를 아무렇지 않다고 여기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구원은 악을 덮어 두는 일이 아니라, 악이 파괴한 생명과 존엄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13. 예수님의 구원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책임을 지워 주는 면죄부가 아닙니다.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이 잘못을 모른 척 외면하거나 악을 그대로 내버려 두겠다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14. 정죄는 그가 저지른 잘못이나 나쁜 행동을 이유로 너는 이것으로 완전히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15. 그러나 구원은 잘못을 분명히 드러내면서도 너의 인생이 여기서 끝나지는 않았다며 새로운 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16. 우리는 사람을 너무 쉽게 한 단어로 규정합니다. 실패자, 문제아, 불신자, 게으른 사람, 믿음 없는 사람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17. 한 번 실수한 사람을 그 실수 속에 가두고,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평생 악한 사람으로만 기억하기도 합니다.

 

18.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을 죄와 실패 안에 가두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그 감옥에서 꺼내기 위해 오셨습니다.

 

19. 예수님께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불렀던 이들과 외면당하고 정죄받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새로운 이름과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20. 예수님은 그들의 삶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잘못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시는 한 사람의 생명을 바라보셨습니다.

 

21. 이것이 구원입니다. 사람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하고,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생명의 관계 안으로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22. 우리의 삶에는 수많은 심판대가 있습니다. 체류 신분과 직업, 신용점수와 재산, 그리고 학력과 지위로 판단을 받습니다.

 

23. 그렇게 세상에서 평가받은 사람이 교회에 왔는데, 교회에서도 헌금과 봉사, 직분과 성경 지식으로 다시 평가받는다면 교회는 또 하나의 법정이 됩니다.

 

24. 교회는 누가 더 의로운지를 판결하는 법정이 아니라, 지친 생명이 다시 일어나는 구원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25. 그렇다고 교회가 사람들의 잘못과 공동체의 문제를 그저 좋은 말로 덮어 주거나 눈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26. 부정과 불의, 학대와 폭력을 감추고 눈감으며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드는 일입니다.

 

27. 구원의 공동체는 상처받은 사람의 안전을 먼저 지키고, 잘못한 사람이 진실을 인정하며 책임지고 변화하도록 돕습니다.

 

28.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은 영혼만 천국으로 옮기는 일이 아닙니다. 두려움에 눌린 존엄을 회복하고, 깨어진 관계를 바로 세우며, 불의한 현실 속에서 죽어 가는 생명을 다시 일으키는 은혜입니다.

 

29. 물론 모든 관계가 이전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안전을 위해 거리를 두고 법적인 도움이나 전문적인 상담을 받는 것도 생명을 살리는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30. 예수님은 세상을 정죄하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정죄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31. 교회 밖에 있거나 문화와 정치적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하나님께서 이미 포기하신 사람처럼 판단하지는 않았습니까?

 

32. 하나님께서 보내신 독생자는 우리에게 손가락을 겨누기보다 십자가에 달려 두 팔을 벌리셨습니다. 그 두 팔은 죄와 불의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면서도, 어떤 사람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33. 예수님은 우리의 잘못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라, 그것을 다 아시면서도 회개와 변화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34. 우리가 정죄하여 포기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저지른 잘못을 없던 일로 여기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을 그 잘못으로만 규정하지 않도록 기도해 보시길 바랍니다.

 

35. 또한 실패한 자신에게도 나는 끝났다고 섣불리 판결하지 마십시오. 잘못을 정직하게 인정하되, 다시 시작하도록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36.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다는 복음을 마음에 품고, 사람을 쓰러뜨리는 말 대신 다시 일으키는 말을 건네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 사람의 잘못을 쉽게 판단하고 한 가지 실패로 그 인생을 규정했던 우리의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죄와 불의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게 하옵소서. 상처 입은 생명을 보호하고, 넘어진 사람에게 다시 시작할 길을 열어 주며, 정죄보다 회복을 이루는 복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