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요한복음 13:1, 4–10a, 14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13: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13: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13: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13: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13: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3:10a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오늘은 "선을 허무시는 예수님" 시리즈 25번째 시간으로 “내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도 함께 나누는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감추어진 선을 발견하고, 주님의 은혜 안에서 그 선을 넘어서는 자유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세 편의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바디매오의 이야기를 통해 도움받는 사람을 수동적인 대상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는 있지만, 막상 자신이 도움받는 것은 견디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병원에 가야 하는데 운전이 어렵습니다. 영어로 의사의 설명을 알아들을 자신도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함께 가 달라고 부탁하면 좋겠지만, 며칠 동안 혼자 걱정하다가 결국 이렇게 말합니다. “괜찮아요. 혼자 갈 수 있어요.” 마음이 무너져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도 누군가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면 습관처럼 대답합니다. “괜찮습니다. 다 잘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꺼내기 어려운 말 가운데 하나는 “도와주세요”입니다. 이민 사회에서 살아온 많은 분에게 남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은 단순한 자존심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었습니다. 영어가 서툴러도 혼자 관공서를 찾아야 했고, 몸이 아파도 가게 문을 열어야 했으며, 형편이 어려워도 부모나 자녀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애써 괜찮은 척했습니다.
이런 태도는 이민 온 뒤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누군가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은 기쁘지만 내가 음식을 받으면 왠지 미안합니다. 다른 사람을 병원에 데려다주는 것은 보람 있지만 내가 라이드를 부탁하는 것은 마음이 불편합니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들어주는 것은 익숙하지만 내 아픔을 말하려면 입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도움을 주는 것은 사랑이라 여기면서도 도움을 받는 것은 폐를 끼치는 일이라 여깁니다. 주는 사람은 관계의 주도권을 어느 정도 가질 수 있지만, 받는 사람은 자신의 필요와 연약함을 내어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마주할 선입니다. 도움을 주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선입니다.
현대 사회는 혼자 서는 사람을 성숙한 사람이라 부르고,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사람을 부족한 사람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을 홀로 완성되는 존재로 그리지 않습니다. 인간은 혼자 서도록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 서로 기대어 함께 살아가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숨을 받아 살아났고, 다른 사람의 품에서 자랐으며, 땅과 물과 햇빛과 수많은 사람의 수고에 기대어 하루를 살아갑니다.
아무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의존을 감출 수 있는 사람과 감출 수 없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의존을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구매하고, 건강한 사람은 아직 다른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도움에 힘입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하신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배반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계셨고, 베드로가 곧 자신을 부인하리라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마지막 밤에 보여 주신 것은 그들의 실패에 대한 책망이 아니라,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섬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식사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으셨습니다.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발을 씻는 관습 자체는 당시 낯선 일이 아니었습니다. 먼지 많은 길을 걸어온 손님에게 발 씻을 물을 내어 주는 것은 일상적인 환대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발을 직접 씻어 주는 것은 대개 종의 몫이었고, 그것도 보통 손님이 도착했을 때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식사가 이미 시작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의 발아래로 내려가셨습니다. 주님이 종의 일을 맡으시고 선생이 제자 앞에 무릎을 꿇으신 것입니다. 누가 높고 누가 낮은지를 정해 놓은 세상의 질서가 대야의 물 앞에서 뒤집혔습니다. 예수님은 말로만 낮아지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몸소 수건을 두르고 제자들의 먼지 묻은 발을 자신의 손으로 씻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날 밤 겉옷만 벗으신 것이 아닙니다. 다음 날에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놓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것은 단지 겸손의 본을 보이신 일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완성될 사랑을 미리 보여 주신 사건입니다.
그 식탁에는 곧 예수님을 부인할 베드로도 있었고, 누가 더 큰지를 두고 다투었던 제자들도 있었으며, 이미 배반의 길에 들어선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자격을 심사하신 뒤 대야를 드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어떻게 실패할지를 아시면서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베드로 앞에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베드로가 놀라 묻습니다.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고 주님이 종의 자리로 내려가는 것은 베드로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질서를 뒤흔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그러나 예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베드로는 더욱 강하게 거절합니다. 13:8a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얼핏 보면 베드로의 거절은 겸손처럼 보입니다. 저 같은 부족한 사람이 어떻게 주님께 발을 내어 드릴 수 있겠느냐는 경외심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그의 거절을 겸손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베드로가 어떤 마음으로 거절했든, 결과적으로 그는 예수님이 어떤 주님이어야 하는지, 자신이 어떤 제자여야 하는지를 스스로 정하려 한 셈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겠다고 장담할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자신의 더러운 발을 내어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주님께서 자신을 위해 가장 낮은 일을 하시는 것은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발에는 길의 먼지만 묻어 있던 것이 아닙니다. 자기 힘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따르겠다는 자존심도 묻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베드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헌금하고 희생하는 일은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을 통해 자신이 쓸모 있는 신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한 일로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고 싶어 하지만, 주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으로 서는 것은 두려워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13:8b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발을 씻는 예식에 참여해야만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예수님과 함께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신앙은 내가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해드리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하신 일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깨끗해진 다음에 주님께 나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의 손에 자신을 내어 맡기고 씻김을 받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신발을 벗기도 전에 주님은 이미 수건을 두르셨습니다. 우리가 도움을 청하기도 전에 주님은 이미 우리 발 앞에 와 계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보다 앞서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우리를 용서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은 우리의 손과 발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손과 발로 빚어 갑니다. 먼저 씻김을 받은 사람이 서로의 발을 씻으며 거룩한 사랑을 배워 가는 것, 이것이 성화의 길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어떻게 말합니까? 13: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조금 전까지 예수님께 자신의 발을 절대로 내어 드릴 수 없다고 하더니, 이제는 손과 머리도 씻어 달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여전히 예수님의 은혜를 자기 방식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손과 머리도 씻어 달라는 베드로의 부탁에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13:10a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온몸을 다시 씻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깨끗한 베드로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씻김이 아니라, 주님께 자신의 발을 내어 드리는 작은 겸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 발을 내어 맡기듯, 믿을 만한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받아들이는 데에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필요를 말하고 연약함을 내어 보이는 것은 용기이자 겸손입니다. 발을 내어 맡기지 않으면 누구도 그 발을 씻어 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예수님은 어떤 사람은 평생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 주고, 어떤 사람은 평생 씻김만 받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서로” 발을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사실도 언제나 그 사람보다 더 강하거나 더 성숙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누구도 도움만 주는 사람이나 도움만 받는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자신의 몸으로 배운 사람이 헨리 나우웬입니다. 하버드 교수였던 나우웬은 교수직을 떠나, 지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삶을 나누는 캐나다의 라르쉬 데이브레이크 공동체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말하거나 혼자 걷고 옷을 입는 데 도움이 필요했던, 지적장애가 있던 청년 아담을 매일 아침 씻기고 입히고 먹이는 일을 했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아담을 돌보는 역할을 맡았지만, 함께 살아가면서 오히려 자신이 아담과의 우정에서 더 큰 선물을 받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업적과 유용함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아도 사랑 받는 아담의 존재 앞에서, 성공과 인정에 쫓기던 자신의 상처 입은 영혼이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배운 것입니다. 나우웬은 아담의 몸을 돌보았고, 아담은 나우웬의 영혼을 돌본 것입니다.
도움을 주는 강한 사람과 도움을 받는 약한 사람 사이의 견고한 선이, 두 사람이 서로의 삶을 내어 맡긴 자리에서 조용히 무너졌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서로 발을 씻는” 공동체입니다. 돌봄은 위에서 아래로 베푸는 일방적인 도움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생명을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그렇다고 상호 돌봄이 도움받은 만큼 같은 방식으로 갚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거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움을 받은 사람에게 보답의 빚을 지우는 순간 돌봄은 계산으로 변합니다. 서로 발을 씻는다는 것은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받은 은혜와 은사를 따라 서로의 생명과 존엄을 지켜 주는 것입니다.
우리 자유교회가 서로 발을 씻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두 종류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수건을 들고 다른 사람 앞에 무릎 꿇는 용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신발을 벗고 자신의 발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 맡기는 용기입니다. 우리에게는 수건을 드는 겸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발을 맡기는 겸손도 필요합니다.
이번 한 주간 믿을 만한 사람에게 한 가지 구체적인 도움을 요청해 보십시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병원에 갈 때 함께 가 달라고, 지금 마음이 힘드니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해도 좋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의 손을 통해 나를 돌보시도록 문을 여는 믿음의 행동입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데 믿음의 용기가 필요하다면, 도움을 주는 데에는 존중과 절제가 필요합니다. 누군가를 도울 때 그 사람을 불쌍한 대상으로 만들거나, 그의 사정을 함부로 알리거나, 그가 스스로 선택해야 할 일을 대신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누구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부탁에는 정직하게 거절할 수도 있는 안전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도움을 청했다고 무능한 사람이 되지 않고, 부탁을 거절했다고 사랑이 없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은 더 적절한 사람이나 전문기관에 연결하는 것도 서로의 발을 씻는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교회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연약한 사람을 관리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서로에게 자신의 연약함을 맡기고 서로의 은사를 받으며, 함께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가는 공동체입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앞에 무릎을 꿇고 계십니다.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대야에 물을 담아 우리의 먼지 묻은 발을 씻어 주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베드로처럼 말합니다. “주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혼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네가 나와 함께할 수 없다.”
혼자 버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여겼던 생각과, 도움받는 것을 수치로 여기던 두려움을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서로의 발을 씻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서로에게 우리의 발을 맡깁시다. 그래서 우리 자유교회가 도움을 주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 나뉘는 교회가 아니라, 모두가 돌보고 모두가 돌봄 받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